프리미엄 김밥점 대박 비결은 ‘업종 변경’

정혜숙 점주의 사례- 김밥 전문 프랜차이즈 브랜드 ‘얌샘김밥’의 서울 신내점 창업

만일 하루에 50만~60만원 매상을 올리던 외식업소의 매출이 2배 이상 껑충 뛴다면? 대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어려워 보이는 일이 업종 전환을 통해 가능해질 수도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김밥 전문 프랜차이즈 브랜드 ‘얌샘김밥’의 서울 신내점을 창업한 정혜숙 점주에겐 이런 일이 한 달 만에 일어났다.

정 점주는 예순을 훌쩍 넘긴 64세의 시니어 우먼이다. 일반기업이라면 은퇴를 해도 벌써 했을 나이다. 하지만, 30년 이상 장사로 단련된 그에게 ‘은퇴’는 없었다. 오랜 장사꾼만의 예리한 후각과 빠른 결단력, 추진력을 겸비해 어떤 악조건에도 적응하는 사업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사업 기간 쌓은 정 사장의 역량은 업종변경 뒤 ‘매출 2배’라는 선물로 나타났다.

정혜숙 점주는 중랑구청 사거리 일대에서 김밥전문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메인 상권에 있어 지금도 매출이 매우 높다.

그런데 ‘장사 9단’인 정 사장에게도 원숭이 나무에 떨어질 법한 일이 발생했다. 매장 두 개를 운영하다 보니 메인 상권이 아닌 매장은 당연히 소홀해져 매출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장사의 베테랑답게 업종변경 창업에 성공, 다시 매장을 부흥시키고 있다.

김밥
얌샘김밥 서울 신내점 모습. 사진=한국창업전략연구소

11년 분식점 장사, ‘트렌드 변화’가 필요했다

“30여 년간 외식사업을 하면서 스몰비어, 밥버거 등 반짝 유행했다 사라지는 업종들을 수도 없이 봐 왔습니다. 오랜 기간 사업을 하다 보니 ‘보는 눈’이 생기더군요. 이제는 몇 가지만 따져보면 장수업종인지 딱 보입니다.”

11년 동안 분식 전문점을 꾸려오던 그는 트렌드 변화에 따라 업종변경을 생각했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과 익숙한 맛 덕분에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는 분식점이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맛이라는 장점이 오히려 손님들로부터 식상하다는 평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 점주는 현재 뜨고 있는 아이템 중에 오래 갈 수 있는 장수업종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업종변경 창업의 첫걸음은 정보 수집과 벤치마킹에서 시작했다.

문제 의식을 느낀 뒤 ‘장사의 더듬이’를 가동했다. 그 과정에서 800m 가량 떨어진 곳에 정혜숙 점주와 같은 대중적인 김밥 전문점을 운영하던 매장이 프리미엄 김밥으로 업종 변경한 뒤 하루 매출 200만원을 올리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불과 1주일 만에 업종을 변경한 것이다.

지난 3월24일 현재의 얌샘김밥 브랜드로 업종 변경 뒤 26㎡(8평) 규모 매장에서 거둔 매출은 정확히 2.3배 증가했다고 한다.

정혜숙 점주의 업종변경 창업 성공비결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첫째, ‘뱀머리 전략’이다. 창업시장에서는 언제나 용 꼬리보다 뱀 머리가 낫다. 업종 변경 전에 운영했던 김밥점은 저렴한 가격대에 허름한 인테리어를 한 낡은 이미지였다. 새로 선택한 김밥 전문 브랜드는 프리미엄 이미지다.

가격이 이전 매장보다 더 비싸지만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바꿨다. 동네 상권을 환하게 밝히는 이미지로 변신하자 더 많은 고객을 끌어모으는 계기가 됐다.

특히 최근 분식의 트렌드가 저가 저품질보다는 가격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고품질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 B급 상권에서 프리미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효과도 누렸다. 업종 변경 뒤 점심시간대에는 20대가 주 고객으로 됐다는 게 이런 트렌드 변화의 효과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둘째, 상권에 맞는 상품전략이다. 업종을 변경한 현재의 매장은 상권이 협소하다. 한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하기에 너무 단촐한 메뉴로는 매출을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혜숙 점주가 선택한 얌샘김밥이라는 브랜드는 50여 가지의 다양한 메뉴를 보유하고 있고, 메뉴가 걸쳐있는 분야도 한식, 중식, 일식 등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다. 외지유입 고객보다는 배후고객이 많아 맛이 중요한데 16년 이상 역사를 보유한 브랜드라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3000원대의 제육김밥과 6000원대의 날치알 샐러드돈까스, 차돌된장비빔밥 돈까스김치오므라이스가 인기 메뉴입니다. 김밥전문점이라 김밥과 라면 등 분식류 뿐 아니라 색다르고 다양한 식사 메뉴도 많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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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샘김밥의 매콤제육김밥 메뉴. 사진=한국창업전략연구소

장사 오래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

오랜 기간 운영했던 분식집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가 얌샘김밥으로 업종을 전환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맛과 메뉴 개발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창업을 결심하기 전 1주일을 투자해 봉화산점, 망우점 등 인근에 있는 동일 브랜드 매장을 직접 방문해 맛을 보았다. 분식집을 11년 운영한 정 점주는 얌샘김밥의 맛과 품질에 놀랐고, 메뉴가 50가지밖에 되지 않지만 한식, 양식, 중식 등 메뉴 구성이 다양하다는 점에 만족했다. 오래 한 것과 잘 하는 것이 다르다는 차이를 깨닫고 ‘말을 갈아타기’로 결심했다.

얌샘김밥의 조리가 간편한 주방 시스템도 마음에 들었다. 기존 분식집을 운영할 때는 70개가 넘는 메뉴를 손수 요리하고, 재료손질부터 조리까지 챙길 정도로 손이 많이 가고 불편했다. 반면에 얌샘김밥은 본사 자체공장에서 ‘원팩’ 시스템으로 식재료가 공급돼 조리시간을 단축시키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셋째, 상권입지의 특성이다. 업종을 변경한 매장은 사실 메인 상권이 아니다. 메인 상권과는 도보로 5분 거리 차이가 난다. 흔히 말하는 B급 상권의 A급 입지다.

즉, 상권 측면에서는 A급이 아니지만, 가시성이 높아 입지 면에서는 A급이다. 정 점주 매장의 부근은 대부분 일반음식점이고, 분식점이 들어갈 만한 자리가 없다. 정 점주의 점포 자리가 유일하게 분식집에 적합한 매장이다. 사거리에서 메인 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골목길 끝자락이다. 분식업의 경우, 이렇게 가시성과 유동성이 높은 자리에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

넷째, 업종의 특성이다. 분식업종은 점심에만 매출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하루종일 매출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참새 방앗간’인 셈이다. 유효고객수가 적어도 매출 발생에 훨씬 유리한 업종이다.

다섯째, 채널의 다양화다. 분식업의 특성상 내점고객, 테이크아웃 고객은 물론 배달까지 가능해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현재 전체 매출 중 배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만 원선이다.

여섯째, 베테랑다운 경영 솜씨도 성공에 한몫 했다. 정혜선 점주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관리 능력이다. 사근사근하고 친절하다. 작은 요소이지만 단골고객이 80%를 차지하는 매장에서 이런 접객 태도는 강점 중의 강점이다. “편한데 앉으세요~”, “맛있게 드셨어요?” 이 작은 한마디가 손님에게 친근함을 전달한다. 음식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면 무조건 새로 요리해서 제공하는 과단성도 빼놓을 수 없는 정 점주만의 서비스 경영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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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샘김밥 김치찌개 원팩 시스템. 사진=한국창업전략연구소

◆ 지속경영& 업종변경 창업 원포인트 레슨  

지난 2012년 중소기업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창업 기업 중 재창업 비율은 27.4%이고, 창업 횟수는 평균 2.6회다. 어떤 사업자이든 살아가면서 한, 두 번 이상 재창업의 기회를 맞아야 한다는 해석이다.

얌샘김밥 서울 신내점의 정혜선 점주는 한창 젊은 때인 25세부터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건어물장사, 웨딩숍 등을 거쳐 현재 김밥 전문점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총 40여 년의 장사 경력을 갖고 있다.

오랜 장사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노하우는 고객을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터득한 것. 어떤 장사든 정혜선 점주가 성공의 핵심 포인트로 꼽는 요소이다. 하지만 시대 흐름이 바뀌면 친절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모든 업종이 흐름을 타고 업종 자체도 노후화하기 때문이다.

지속 경영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시대 흐름에 맞춰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제가 최적의 시기인지, 어떤 업종으로 변신하는 게 맞는지 파악하는 눈썰미와 감각, 그리고 깨어있음이 필요하다. 필요하면 전문가 상담도 받아야 한다.

업종을 변경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트렌드 변화다. 시대 흐름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성공 확률이 높다. 정혜선 점주의 경우, 저가 싸구려 분식에서 프리미엄 분식으로 전환되는 트렌드를 잘 파고들어 성공한 사례다.

매장 인근이 아파트 및 주거 단지이지만 업종 변경 뒤 20대 고객이 부쩍 늘어난 이유는 젊은층들의 소비 욕구에 잘 맞는 업종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청 사거리 쪽은 비슷한 면적의 매장 월세가 400만 원대이고, 권리금도 1억 원대가 넘는다. 현재 업종 변경한 매장의 경우, 권리금 시세가 4000만~5000만 원선, 월세는 200만 원선이다. 메인 상권에 비해서 매출은 낮지만 그만큼 경비가 절약되는 셈이다.

좁은 상권이지만 ‘항아리 상권’으로 인근에 경쟁점이 들어설 가능성이 낮고, 들어올 만한 자리도 별로 없다. 현재 매장에서 분식점 운영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이었고, 거의 11년만에 업종 전환을 한 셈이지만, 분식업종 자체가 안정성이 높은 업종이므로 이번 업종 변경을 통해 앞으로도 큰 무리 없이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http://daily.hankooki.com/lpage/column/201605/dh20160519184501140410.htm

韓·中 ‘김의 전쟁’

김 한장 나지않는 태국이 웃는까닭?

김은 우리 어민들에게 효자 상품이다. 작년 한 해 3000억원어치를 수출했으며 이 액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김 수출액은 인삼보다 많다. 주변국들이 이런 사업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다. 중국은 최근 연안에서 김 양식장을 확대하고 있고, 김 한 장 나지 않는 태국은 한국·중국 김으로 과자를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한국과 중국, 태국 등이 뒤엉킨 ‘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김 시장 동향 파악에 나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정명생 수산연구본부장과 장홍석 박사를 동행 취재했다.

韓·中 '김의 전쟁'… 김 한 장 나지 않는 태국이
일러스트= 김성규 기자

한 해 3000억원 수출 효자 상품

전 세계에서 김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뿐이다. 대만과 뉴질랜드 등에서도 김을 생산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김’이라는 이름은 1600년대 전남 광양에서 김 양식에 성공한 김여익의 성(姓)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질 좋은 김은 대부분 일본에 수출했다. 과거 일본은 자국에서 생산한 김은 물론 중국과 한국에서 들여온 양질의 김을 모두 먹어치우는 김 종주국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시장이 달라졌다. 일본은 김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줄어들었고, 경제력이 커진 중국과 우리나라의 김 생산과 소비량이 늘어났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김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 미국·유럽에선 김을 블랙 페이퍼(Black Paper)라고 부르며 일종의 혐오식품처럼 여겼으나, 지금은 감자칩을 대체할 수 있는 웰빙 건강 스낵으로 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김을 ‘마법의 효능을 지닌 수퍼푸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에는 비타민A와 단백질, 칼슘이 풍부하다. 다만 한국과 일본에선 밥과 함께 김을 먹지만 다른 나라에선 간식이나 술안주용으로 즐겨 찾는다고 한다.

현재 김 수출 1위 국가는 한국이고 2위는 중국이다. 한국은 재작년 3000억원어치를, 중국은 1500억원어치를 수출했다. 우리나라 김 수출은 10년 만에 다섯 배 늘어났고, 수산물 가운데 참치 다음으로 수출액이 많다. 김 제품엔 김 해초를 얇게 펴서 말린 뒤 A4용지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절단한 마른김과, 마른김을 더 작게 잘라서 기름과 소금을 가미한 조미김, 마른김을 가공한 김스낵(과자) 등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는 조미김 시장의 최고 강자(强者)다. 일본 조미김은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내 일본 사람 입맛엔 맞을지 몰라도 외국인 입맛엔 맞지 않아 세계화에 실패했다. 반면 고소한 참기름이나 들기름 등과 소금으로 맛을 낸 조미김은 외국, 특히 북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작년 미국에 조미김을 700억원어치 팔았고, 자기 나라 조미김을 최고로 치는 일본에도 400억원어치를 팔았다. 우리나라 조미김을 수입한 나라는 10년 전 32개국이었으나 지금은 90여 개국에 달한다. 아프리카, 구소련 연방 국가도 조미김의 고객이다.

김 생산량 확대하는 중국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 생산 1위국인 중국을 잘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 김 생산량은 2003년 60만t에서 2013년 114만 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국은 장쑤성과 저장성 연안에서 대규모로 김을 생산해왔고, 최근 광둥성과 푸젠성에 대규모 김 양식장을 만들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김국을 끓일 때나 술안주 등에 김을 사용한다. KMI 장홍석 박사는 “1990년대부터 중국은 일본·대만·홍콩에서 양식 기술과 설비를 도입하는 등 김 양식에 많은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면서 “국거리용 김과 마른김을 주로 생산하다 요즘은 수출을 염두에 두고 조미김과 김 스낵으로 상품을 다양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사이 우리 김 생산량도 20만t에서 41만t(2014년 기준)으로 늘어났으나, 아직 중국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자국에서 나온 김을 내수에 많이 쓰는 중국이 수출로 방향을 바꾸면 우리나라 김 수출 전선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동남아·일본 등엔 저가(低價)의 중국 김 유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반면 일본의 김 생산은 중국과 우리나라에 이어 3위로 추락한 상태다.

그런데 김의 전쟁에서 주목해야 할 나라가 바로 태국이다. 김 한 장 나지 않는 나라이지만 김 제품 수출이 우리나라, 중국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으며 그 성장세도 폭발적이다. 10년 전 한국과 중국에서 조금씩 마른김을 수입했던 태국은 6년 전부터 수입량을 대폭 늘리고 있다. 요새는 우리나라 마른김의 절반이 태국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태국은 한국·중국산 김을 김과자로 가공해 다시 수출한다.
태국은 한국·중국산 김을 김과자로 가공해 다시 수출한다. 사진은 방콕 대형마트 빅시의 김과자 코너 / 방콕=강훈 기자

지난 20일 태국 방콕 중심부에 있는 대형마트 빅시(Big C). 과자와 스낵 코너에 있는 길이 15m 진열대 전체가 김 관련 상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미국에서 잘 팔린다는 한국산 조미김은 한 귀퉁이에 몇 봉지 진열돼 있을 뿐, 제품 대부분이 태국산 김과자였다.

기름에 튀긴 튀긴김, 소스를 발라 그릴에 구운 훈제김은 물론 ‘열대과일의 왕’으로 불리는 두리안을 말려 그 겉을 김으로 두른 두리안김, 우리 된장찌개와 비슷한 �얌꿍의 맛을 낸 �얌꿍김 등 각종 김과자가 가득했다. 맛도 매운맛, 신맛, 단맛으로 다양했다.

KMI 정명생 본부장은 “한국과 중국에서 수입한 그 많은 마른김을 김과자로 가공한 것”이라며 “태국은 김과자라는 새로운 제품의 시장을 개척하고 김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빅시에서 멀지 않은 대형마트 테스코 로터스(Tesco Lotus)의 스낵 제품 코너엔 일부 김과자가 다 팔리고 품절된 상태였다. 쇼핑을 나온 노이(34)씨는 “아이가 김과자를 너무 좋아한다”면서 튀긴김 두 봉지를 사갔다.

김과자는 가격이 매우 비싼 편이었다. 중량 20g 되는 김과자 봉지를 뜯으니 작고 길쭉한 모양의 튀긴김 6개가 들어 있었다. 그 과자 가격은 40바트(약 1300원)였다. 무게를 기준으로 하면 태국의 다른 과자류보다 최대 10배 이상 비싼 편이라고 한다.

김과자 시장 개척한 태국

태국의 김과자 역사는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티팟 피라데차판이라는 타오케노이사(社) 창업주가 김과자를 출시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 사장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인기를 끌었다. 태국 김과자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타오케노이는 ‘터미널21’ 등 방콕 시내 여러 곳에 김과자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과자가 히트를 치자 태국 대기업들도 김과자 시장에 뛰어들었다.

맥주 회사로 유명한 싱하는 지난해 김과자 생산과 판매를 위한 별도 계열사를 만들었다. 후발 주자인 싱하는 한류 마케팅을 적극 구사했다. 과자 봉지에 슈퍼주니어의 규현을 모델로 쓰고, 제품명에 우리말인 ‘맛있다’를 썼다. 과자 원료인 김이 100% 한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싱하 공장의 매니저 시라티콘 상산씨는 “경쟁사들은 중국산 김과 한국산 김을 섞어 쓰지만, 우리는 품질 좋은 한국산 김만 사용한다”고 했다. 중국산 마른김이 가격도 싸고 양이 많지만 품질이나 이미지 측면에서 한국산 김을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태국은 김과자 수출에도 성공했다. KMI 장홍석 박사는 “태국의 김과자 수출 금액은 현재 3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그 물량이 매년 늘어나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면서 “태국 김과자는 한국 조미김과 함께 김의 세계화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했다. 태국은 김과자를 중국·일본·미국뿐 아니라 호주·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으로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 아시아 식품 강국인 태국은 ‘세계의 주방(Kitchen of the World)’이라는 정책 슬로건을 내걸고 식품 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참치캔 제조 분야에선 이미 세계 1위 생산·수출국이 됐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송미정 방콕 사무소장은 “태국은 한료로 세계 30개국에 김과자를 팔고 있다. 태국 제품을 능가하는 새 형태의 김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 CJ, 동원F&B 등도 김과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정부도 지원에 나서고 있다. 조미김과 마른김 시장을 놓고 우리나라는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고, 김과자 시장에선 태국과 한판 승부를 겨뤄야 하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오늘은 내가 ‘김밥 전선생’

‘도라지와 당근을 6 x 1 x 0.1㎝ 크기로 2개씩 만들고 쪽파는 파란쪽 2㎝, 흰쪽 4㎝ 등 총 6㎝를 자르시오.

고기는 2㎝ 더 길게 잘라 얇게 두드리시오.’

지짐누름적 레시피의 일부다.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비단 이 뿐만 아니라 요리학원의 모든 음식에는 썰고, 두들기고, 데치고, 두르고, 볶고, 익히고, 꽂고, 얹는 다양한 요리법이 정형화되어 있다. 종강 한 달 반쯤 지난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음식도 상당수여서 세부적인 레시피는 책을 들춰봐야 알 지경이다.

김밥

가끔 이런 의문이 든다. ‘제대로 해먹지도 않을 음식 조리법을 왜 배웠을까.’ ‘아예 김치찌개, 된장찌개처럼 평소 자주 해먹는 음식만 배웠으면 좋지 않을까.’ 최근 여행을 함께 다녀온 퇴직 공무원은 ‘집밥 백선생’의 레시피가 가장 피부에 와닿는다며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식조리사자격증 과정이 무용지물에 가깝다고도 했다.

무와 당근, 달걀 등을 규격에 맞게 칼로 써는데 지쳐버린 나도 그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100시간 동안 익힌 쉰 한 가지 요리가 쓸모없을 리는 만무하다. 일상생활에서 사장될 가능성이 높은 음식도 많지만 두루두루 요리의 기본기는 갖추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음식을 기름에 튀기기도 하고, 석쇠에 구워보기도 했으며 밀가루로 칼국수 면발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아마 김치찌개류에 만족했다면 평생 접해보지 않았을 요리법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최소한 요리가 두렵지는 않다. 시중에 나도는 수많은 요리책, TV를 도배한 쿡방, 모바일 요리앱 등에서 선보이는 수많은 요리가 딴나라 얘기였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제로 요리를 잘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자신감 하나는 충만하다. 정 급하면 요리강사에게 SOS라도 치면 될 일이다.

이 자신감은 바로 레시피 해독에서 나오는 것 같다. 옛날에는 조리법을 백 날 쳐다보고 있어도 상형문자로만 여겨졌다. 고춧가루 한 큰 술, 간장 한 컵이 무슨 소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숟가락과 컵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리의 세계에는 200cc, 15cc, 5cc 등으로 규격화된 계량컵과 스푼이 있다.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한 고비 넘기고 다음 길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처음 먹었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학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어머니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 온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상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 그 요리의 선봉에는 온 국민의 주식 겸 간식인 김밥이 있다. 오십 평생을 어머니, 아내, 이웃, 김밥집 아주머니가 만들어준 김밥을 내 손으로 이제야 만드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끝났지만 현실적인 장애물은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소풍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김밥 요리를 예고했더니 반응이 신통치않다. 집 안의 여성동지들이 모두 체중감량을 핑계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날마다 저울 달아보고 눈금 하나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데, 김밥은 가장 유혹적이면서도 거부해야만 하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나 혼자 김밥 우물거리지 않으려면 그들의 고민 아닌 고민을 해결해줘야 했다. 생각 끝에 백미를 현미로 대체했다.

김밥
김밥은 하얀 쌀밥에 싸는 것이 제 격인데, 거무틱틱한 현미로 제 맛이 나올지는 의문이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장에 들러 김밥용 김과 달걀, 햄, 맛살, 당근, 단무지, 깻잎, 오이, 우엉, 청양고추, 깨소금까지 준비를 모두 마쳤다. 달걀은 황백 분리하려다 흰자 노른자 한꺼번에 지단으로 만들었다. 햄과 당근도 프라이팬에 익혔다. 현미밥에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하다 손가락 데일 뻔했다. 뜨거운 밥알이 손에 달라붙어 입으로 뜯어먹느라 혼났다. 자 이제 말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김발 위에 김과 깻잎을 얹고 밥알을 까는 것이 여간 난제가 아니었다. 밥주걱으로 현미를 김 위에 얇게 까는 것부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빈 틈 없이 꼼꼼히 밥알로 메운 후 깻잎 두 장을 깔고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김을 말려고 했더니 뭔가 허전했다. 김치가 빠진 것이다. 후다닥 손가락으로 김치를 길게 찢어서 올리고 김밥을 마는 것으로 오늘의 요리를 완성했다.

조리사과정 비공인 요리 1호였다. 옆에서 TV 채널을 돌리던 아내가 슬그머니 다가와 김밥을 썰기도 전에 한 입 먹어본다. 다이어트 한다더니 잘만 먹는다. 큰딸은 김밥을 보자마자 “나 저녁 안먹어요”라며 선수를 친다. “맘대로 해라”며 모른척하고 우물우물 먹고 있으니 언제 왔는지 옆에 서서 한입 먹고 있다. “맛있다”는 찬사가 미끼인 줄도 모르고 나는 웃고 있다.

http://www.hankookilbo.com/v/7c4e85b92c1044ed98caae69789e42f2

4人4色 ‘내 인생 최고의 라면’

한 젓가락에 담긴 위로… 예술… 소통… 친구

《인생라면. 언젠가부터 유행하는 말이다. ‘내 인생 최고의 라면’이라는 뜻이다. 인생라면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도 제일 좋아하는 라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 1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밝힌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연간 76개다. 5일에 한 번꼴로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

세계에서 단연 1위로, 2위인 베트남(55개)의 소비량을 크게 앞선다. 이런 음식이 라면 말고 또 있을까.(밥만 먹는 경우는 없으니 밥은 경쟁에서 제외다.) 이렇게 라면을 사랑하는 한국인인데 인생라면 하나쯤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로부터 인생라면에 대해 들어봤다. 듣고 나니 왜 인생라면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꼬불꼬불한 면발처럼, 뜨거운데 시원한 국물처럼, 라면에는 인생이 담겼다.》


신라면 애호 이연재 씨

세무사 시험 떨어져 좌절했을때… 분식집 아줌마가 보낸 응원의 맛


2014년 11월 중순 어느 날 오후. 당시 34세였던 이연재 씨는 서울 종로구 연지동 분식집의 문을 열었다. 보름간 술만 퍼마시다가 찾은 이곳. 다름 아닌 4년 동안 1주일에 5번씩 찾았던 단골집이었다.

그는 신라면을 주문했다. 분식집 여사장님은 여느 때처럼 계란을 먹기 좋게 풀어낸 라면을 내왔다. 이 씨는 한숨 끝에 입을 열었다. 세무사 2차 시험에서 또 떨어졌다는 말. 이제 공부 그만하겠다는 말. 그의 말을 들은 사장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라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학원으로 뛰어가 공부할 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 씨는 그길로 다시 학원으로 갔다. 그는 2015년 세무사 1차, 2차 시험을 통과해 세무사가 됐다.

이 씨에게 분식집 사장님은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30년이라는 나이 차를 뛰어넘은 친구이기도 했다. 서른이 넘어 뒤늦게 세무사 공부를 시작한 그는 저녁이면 분식집을 찾곤 했다. 학원과 고시원, 그리고 분식집이 그가 머무는 공간의 전부인 시절이었다. 테이블이 5개뿐인 작은 식당이지만 그의 삶에는 오아시스였다.

그는 늘 신라면을 먹었다. 혀끝에 감기는 매운맛이 불안함을 잠시나마 잊게 했다. 이 씨는 라면을 먹으며 사장님과 세상 얘기를 나눴다. 하루 종일 그가 타인과 나누는 대화는 사장님과의 몇 마디뿐이었다. 종종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분식집에 가기도 했다. 사장님은 저놈 또 술 사들고 왔다며 인상을 썼다. 그러면서 계란을 곱빼기로 넣은 라면에 김치를 넉넉히 썰어 내놓곤 했다.

이 씨는 지금도 종종 그 분식집을 찾는다. 신라면을 먹으며 사장님에게 세금 상담을 해준다. 그는 집에서도 자주 신라면을 끓여 먹는다. 맛있긴 해도 분식집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다. 뭘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았던 시절에 유일하게 맛있었던 그것.

그에게 라면은 ‘위로’다.


팔도비빔면 사랑 이그림 씨

고명-소스 바꾸며 매번 새 조리법… 창작의 욕구도 함께 타올라요


“다른 재료를 하나도 안 넣고 라면을 먹는다고요? 그건 라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요. 라면이 얼마나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는데요.”

봉지에 든 면과 수프만 가지고 라면을 끓이면 모욕이라니. 어떻게 라면을 먹으라는 걸까. 신념이 확고한 이그림 씨(59·여)는 라면 봉지를 옆에 두고 고명부터 다듬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오크라에 비트 물을 들여 담근 자줏빛 장아찌를 썰었다. 직접 키운 보리 새싹도 잘랐다. 셀러리와 전호 나물도 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끓기 시작한 물에 팔도비빔면의 면을 넣었다. 면발을 찬물로 씻은 후 비빔면 소스와 직접 담근 고추장을 반반 섞어서 비볐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놓은 화려한 고명들을 올렸다.

“지금까지 똑같은 라면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요. 매번 새로운 조리법을 시도해요. 고명을 달리하기도 하고 소스를 바꾸기도 하고 면을 익힐 때 이것저것 넣어보기도 하죠.”

그런 그에게 비빔면은 최고의 도구다. 어떤 재료든지 훌륭하게 소화해내기 때문이다. 처음 독창적인 비빔면 요리를 한 건 두 아들 때문이었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들들을 위해 비빔면에 여러 채소를 섞었다. 아들들은 곧잘 먹었다. 수박즙과 고추장을 섞어 만든 소스로 맛을 낸 비빔면을 수박 위에 얹은 수박라면을 만들었을 때에는 주변의 감탄이 쏟아졌다. 이 씨는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비빔면 재료로 딸기와 죽순을 추천했다. 비빔면 소스에 딸기 2개를 갈아 넣으면 상큼한 맛이 더해진다. 여기에 말린 죽순을 데쳐서 물기를 짜면 쫄깃해지는데 새콤달콤한 면발과 함께 먹기에 제격이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전공을 물어보니 동양화란다.

“그림과 라면은 많이 닮았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거든요.” 그에게 라면은 ‘예술’이다.


진짬뽕 마니아 이동현 씨

부모님-여자친구-동호회원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에 맛도 두 배

이동현 씨(29)는 일요일이면 늦잠을 잔다. 정오가 다 돼서야 일어난다. 지난밤의 술자리가 떠오르면서 취기가 살아난다. 취기를 달래기 위해 그가 찾는 것은 오뚜기 진짬뽕이다. 이 씨는 요즘 매주 일요일 오후 2, 3시면 진짬뽕을 끓여 먹는다. 그는 “진짬뽕 한 그릇에 밥까지 말아 먹으면 나른함과 취기가 모두 달아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작년 10월 진짬뽕이 나오기 전까지 이 씨는 특별히 좋아하는 라면이 없었다. 대부분의 라면은 먹고 나면 텁텁한 느낌이 남았다. 그래서 어떤 라면이든 쉽게 질리곤 했다. 하지만 진짬뽕은 달랐다. 굵고 쫄깃한 면발을 따라 올라오는 국물이 깔끔했다. 혀부터 목까지 넘어가는 느낌이 시원했다.

면보다는 밥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도 진짬뽕은 예외다. 아버지는 이 씨가 일요일에 진짬뽕을 끓일 때면 식탁에 앉는다. 어머니도 슬쩍 합류한다. 이 씨는 “부모님도 좋아하셔서 더 많이 먹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진짬뽕에 매료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먹어볼 것을 권한다. 지난해 연말 스쿼시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한 엠티에서 그는 직접 요리사로 나섰다. 진짬뽕에 각종 해물과 야채를 넣고 끓였다. 사람들은 “정말 짬뽕 같다”며 좋아했다.

진짬뽕을 자주 끓이다 보니 점점 조리 실력이 늘고 있다. 그는 “바지락 새우 오징어 등 해물을 넣고 파와 양파도 양껏 넣으면 멋으로나 맛으로나 중국음식점의 짬뽕처럼 만들어진다”고 전했다. 라면을 안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이 씨가 끓이는 진짬뽕만큼은 사양 않고 먹고 간다. 그는 “진짬뽕은 내가 요리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미래의 자녀에게도 ‘아빠표 짬뽕’이라고 뽐내며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라면은 ‘소통’이다.


불닭볶음면 환호 김세연 씨

시험기간 친구들과 한그릇 뚝딱 ‘N포세대’ 청춘 스트레스 훌훌


23세. 대학 4학년. 취업 준비 중. 아, 그리고 문과.

괜스레 마음이 짠해진다. 김세연 씨(23·여)는 현재 청춘의 고개를 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학기를 마친 후 휴학 중이다. 현재는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그 역시 많은 청춘들처럼 일찍부터 힘들었다. 대학 입학 후 시작된 스펙 쌓기 경쟁. 긴장이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잠시나마 기분 전환을 하는 건 역시 먹을 때다. 김 씨는 많은 먹거리 중에서도 불닭볶음면을 첫손에 꼽는다.

“불닭볶음면을 먹으면 열이 확 올라왔다가 식어요. 그때 긴장이 풀리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그 느낌 때문에 김 씨는 시험 기간이면 자주 불닭볶음면을 먹었다. 조별 과제를 할 때마다 친구들과 즐겨 찾는 것 역시 그것이다. 학교 매점에서 주로 먹기 때문에 컵라면을 애용했다. 불닭볶음면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차렐라 치즈를 얹어 먹는 조리법이 많이 알려졌다. 불닭 소스의 매운맛과 치즈의 고소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최근 아예 치즈 가루가 포함된 ‘치즈불닭볶음면’이 나와 김 씨 같은 불닭볶음면 마니아들은 환호했다.

김 씨는 불닭볶음면이 가장 맛있었던 순간으로 친구들과 떠난 엠티를 떠올린다. 구워 먹고 남은 고기와 김치, 밥 거기에 불닭볶음면 소스를 넣고 볶으니 흡사 제육볶음 같았다. 그 위에 얹어진 치즈도 대학생들 입맛에는 딱이었다. 청춘의 고개를 같이 넘는 친구와 함께였기에 더욱 맛있었다. 그는 2012년에 대학생이 됐고 불닭볶음면은 그해 4월에 처음 나왔다. 불닭볶음면은 그와 대학 생활을 줄곧 함께한 것이다.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 더 많은 스트레스가 있겠죠. 그때마다 대학 때 먹은 불닭볶음면이 생각날 것 같아요. 배도 채워주고 스트레스도 풀게 해준 좋은 친구로 기억하겠죠.”

그가 말했다. 그에게 라면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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